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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호복희의 팔괘 한역팔목으로 거듭나다

Part 4. 태호복희의 팔괘 한역팔목으로 거듭나다
08 8일차 (요제릉, 어태현 태호복희 획팔괘처 탐방)
요제릉
이날의 첫 번째 여정인 하남성 산동성에 있는 하택시 요제릉에 도착했다. 수천 년 전 임금의 무덤이라고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초라하기 그지없는 흙무덤이었다. 작고 볼품없었고 일제의 도굴흔적으로 보이는 구덩이가 있었다. 전설 속 임금의 능묘라기엔 전혀 관리되지 않고 있었다.
무덤 앞 동네 여인네들에게 우리 일행이 이 묘가 요제릉이 맞냐고 물으니, 흙을 쌓아 놓은거지 무덤이 아니라며 우리 일행을 혼돈스럽게 하였다. 그 찰라에 이곳 사당지기인 66세 왕극춘 할아버지가 나타나, 이곳이 요임금의 무덤이 맞으며 맞은편 낡은 사당이 있으니 들어가 보라며 우리 일행을 안내했다.
무덤마당에는 잡풀이 무성히 자라고 있었다. 이제껏 보아온 능묘와 사당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사당 한구석 어느 비석에는 2008년 한국락앤락회장이 사당보수금을 희사했다는 얘기가 씌어져 있었다. 사당 앞에는 향로조차 없어서 정광호 학회장께서 땅에 나뭇가지로 삼각형씰마크를 그리고 그 안에 향을 꽂은 뒤 감사의 예를 올렸다.
요제릉을 출발하여 오후 6시가 다되어 어태현 태호복희사당(획팔괘처)에 도착하였다. 획팔괘처는 태호복희씨가 팔괘를 하늘로부터 받은 곳으로 전해져 오고 있다. 또한 이곳은 우리의 이번 탐방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이곳은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로, 말그대로 태호복희가 하늘로부터 팔괘의 영감을 받아 처음으로 팔괘를 그려 얻은 곳이다. 이곳은 산동성에 현재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사묘건축물이다. 특이한 점은 릉 위에 복희·여와사당이 만들어진 점이다. 릉 위에 사당을 건축했다는 점은 중국사묘 건축역사상에는 유일하다한다. 
이곳은 태호복희씨의 형상을 조각한 조각물만 있는 사당이었고, 가슴에 팔괘를 안고 있는 모습이었다. 
정광호 학회장께서 감사의 마음으로 우주마음에 예를 올렸다. 헌향과 헌주를 하고 잠시 침묵으로 복희씨의 영과 교류하며, 이제 팔괘를 가져가도 되겠냐고 하자, 복희씨의 영이 가슴에 품고 있던 팔괘를 통째로 가져가라고 했다고 하였다. 영적에너지가 낮은 일반 사람들이 이런 행동을 할 때는 어김없이 하늘의 응징(주살)을 받을 거라 하였다.
태호복희상
팔괘대에 올린 한역팔목, 삼목, 초광력씰
정광호 학회장께서 제단 앞에 놓여있던 팔괘대 위에 한역팔목과 삼목을 올려놓고, “이제 태호복희 팔괘는 온전히 한역팔목과 삼목으로 거듭납니다.” 라고 하였다. 이날 태호복희씨의 팔괘는 한역의 뿌리로서 정광호 학회장께서 만든 팔목으로 다시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정광호 학회장께서는 이제 팔괘는 앞으로 영원히 우리 민족 뿐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빛viit을 세상에 알리는 역할을 할 거라고 하였다. 
그리고 복희사당 뒤쪽에 위치한 여와사당에도 헌향하며 빛viit을 주었다. 
일행은 마당으로 나와 ‘황정’이라는 비석이 세워져 있는 우물에 모여, “이 우물은 우주마음으로부터 받은 팔괘의 기적으로 생겨났으며, 우물의 물을 마시면 모든 아픔이 사라지는 기적의 샘물이 되었다”는 우물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정광호 학회장께서 빛viit으로 그 샘물과 팔괘를 연결하고 “이제 이것도 우리 우물이다”고 하며 이곳에 빛viit의 안테나를 세웠다.
그 무렵 건너편 하늘에 있던 해질녘 태양을 향해, 정광호 학회장께서 빛viit을 보내며 “커져라”라고 말하자, 이미 서산으로 넘어간 해가 그 소리에 맞춰 다시 떠올라 크고 환하게 분열하여 점점 더 우리 가까이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 광경을 함께 지켜본 서안 장명철 가이드가 우리 일행을 사진에 담으며 사진에 담긴 빛현상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