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역팔목 출간에 부쳐
‘우리 상고사 기행’의 저자 지승 스님
정광호 선생께 부치는 글
나는 30년 동안 상고사를 해왔다. 백제가 망하면서 사비성이 불타던 날, 또 고구려의 평양성이 함락되던 날, 그 도성의 불길들은 역사창고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당나라 군사 설인귀가 제 임금의 명령대로 불을 지른 것이다. 우리역사는 그때 민멸泯滅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결과가 오늘 서토인의 동북공정東北工程과 악착한 일본의 독도 문제를 만들었을 것이다.
서기 1992년 9월부터 서기 1996년 6월까지 나는 흑룡강 지역인 대흥안령과 소흥안령 지역을 두루 돌아보며, 몽골족 만주족 어원커족 어룬춘족 다굴족 시바족 허절족을 취재하고 다녔다.
그리고 황하문명의 시원으로 말해지는 삼황오제三皇五帝를 찾아 황하 위쪽에서부터 양자강 이남까지 다시 5년을 헤매었다.
삼황三皇과 오제五帝는 배달나라 신시神市정부의 명령을 받고 중원대륙에서 제후諸侯:地方長官를 살았던 분들이다.
단 산동성 하택시荷澤市 목단구牧丹區에 있는 요堯임금 능묘는 1936년에 왜놈들이 도굴로 훼손한 것을, 서기 2006년부터 복원을 시작하여 지금은 거의 완성단계에 있다.
파밀고원에서부터 삼신 할매의 손자국이라하여 엉덩짝에 시퍼런 몽골반점을 달고 태어나는 우리는, 파밀고원을 벗어나 천산산맥과 알타이산맥 그리고 한가이산맥을 넘어서 바이칼에 닿아, 거기서 동서가 2만리 남북으로 5만 리나 되는 밝누리나라波奈留國을 건설한다.
그것이 전설로 전하는 7세 한인천제桓因天帝들의 한국桓國인데, 12개의 작은 나라들로 나누어지는 연방국聯邦國이었고, 그 끄트머리의 슈메르는 나중에 그리스 문명과 에집트 문명의 모태가 된다.
그러나 그 거대한 한국도 바이칼 침하와 함께 운명이 다하여 떠나야 하는 날이온다.
그리하여 앙강라 강에 뗏목을 띄우고 흑수黑水(黑龍江)를 건너 흥안령에서 발길을 멈춘 사람들이 앞에서 말한 일곱민족이다.
그러나 한웅족은 대륙으로 깊숙이 남하하여 오늘의 서안西安에다 나라 터를 잡고, 태백산에다 국가 제단祭壇(수두蘇塗)을 묻으면서 밝달나라倍達國을 시작한다.
지금 그 태백산 꼭대기의 한웅천왕 사당이 그것을 증명한다.
삼황오제에서도 첫 번째가 되는 태호복희씨太昊伏羲氏는 제 5세 한웅천왕의 열 두 번째 아드님이다.
지금의 감숙성 천수시天水市에서 태어났고 거기에 사당이 있다.
성장해서는 홍산문화가 발굴되는 요하遼河 곧 청구靑邱와 낙랑樂浪(오늘의 서요하는 요락수遼樂水 대능하를 백랑수百浪水라 했는데, 요락수遼樂水의 락樂과 백랑수百浪水 의 랑浪을 따서 낙랑樂浪이라 함)을 거쳐, 하남성 회양현淮陽縣에 있는 여와씨女媧氏의 여黎나라를, 진陳나라로 봉토 받는다.
여와씨의 여黎나라는 모계 사회였으므로, 복희 한아비는 혼인의 예법을 가르쳐서 처음을 부부라는 것을 세운다. 부부는 촌수가 없지만 거기서 부자父子라는 일촌一寸이 나오고, 형제라는 이촌二寸이 생기고 삼촌 사촌 오촌 육촌…이렇게 해서 비로소 부계의 질서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 외에도 부계의 제사를 가르쳐서 우주가 음양의 조화 속에 있음을 알게 하고, 팔괘를 그려 장차오는 일을 알게 했으며, 그물을 엮어 고기잡는 법을 가르치는 등으로 문명의 살림을 차례로 가르친 것이다.
저 서토의 지나인들이 태호복희 할아버지를 그들 문명의 비조鼻祖로 꼽는 것이 까닭이 이러해서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여기 한반도의 남쪽 대구에서는 지금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아니다, 이 일은 26년 전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정광호鄭光浩선생이 행하는 이적이다.
그와 만나서 이야기를 하고나면 몸에서 금가루가 나온다.
병이 있는 사람은 병을 치유하고 달리 원하는 것이 있는사람은 원했던 바를 이룬다.
원망하는 마음도 풀어 없어지고, 시기하고 질투하던 감정이 봄눈처럼 녹아서 화평을 경험한다.